
| 이코노미사이언스 박성현 기자 |
한국은행 입행 후 옛 신용관리기금 등 굵직한 직장을 두루 거쳐, 결국 금융감독원 선임국장까지 오른 남자가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샤프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금감원 안에서도 '보이스피싱 때려잡는 남자' '피싱범 저승사자'로 명성을 날렸다.
조 이사장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국장으로, 저축은행 구조조정 작업을 주도해 현재 업권 정상화를 이뤘다. 또 2015년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목소리인 '그놈목소리' 파일을 공개해서 사람들의 경각심을 고취했다. 그 결과 2000억 원이 넘던 금융사기 피해액을 500억 원대로 크게 줄여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사금융피해설립신고센터' 설립, 서민금융 이용자를 대상으로 신용도에 맞는 대출상품을 안내하는 '한국이지론' 탄생 등 공로로 금감원 선임국장에까지 올랐다. 퇴임 이후에도 민간조직인 서민금융연구원을 세워 원장을 지냈고, 이후 서민금융연구원 이사장이 된 '서민금융 분야 베테랑'이다.
그의 또다른 면모는 바로 모교, 동문에 대한 사랑이다. 1961년 5월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강경상고에 들어갔다. 박정희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동문 등이 유명한 바로 그 명문고다. 현재 강경상고 총동문회 회장으로 많은 선·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자신이 쓴 책 두 권(금융관련 입문서)에 대한 독후감을 받고 출판사에서 선정한 순위에 따라 지급을 하는 독서경진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요새 조 이사장의 낙이다.

경기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공부를 여기저기서 이어갔으며, 결국 다시 경기대에서 박사학위를 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의 금감원 이력 중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가 사채 피해 방지. 힘없는 서민들의 사채 피해에 그가 심각성을 느낀 것은 2001년 4월 2일 사채피해신고센터에 부임하면서다.
"점심을 먹고 막 들어와서 책상에 앉았는데, 전화가 와요. 직원들이 아직 안 들어왔으니 내가 그냥 당겨받았지요. 그런데 사채업자에게 단돈 200만원을 빌렸다가 삽시간에 불어나는 이자로 그야말로 먼 곳의 티켓다방에 팔려가게 됐다는 젊은 여성의 전화였어요"
그는 당시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문은 나중에 만들어 줄 것이고 문제 생기면 어떻게든 책임을 질 테니 형사들을 바로 보내달라"고 압박, 결국 여성을 구출해 냈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에는 그걸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매일 같이 셔터가 내려진 저축은행 본점 앞에 찾아와 우는 피해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와 저축은행 사태는 이미 그 전에 다른 일을 처리하면서 얽혀 있었던 '운명'이었다. IMF 구제금융 도입을 겪으면서 당시 정부는 각종 문제를 처리하느라 골몰했다. 그때 선제적으로 저축은행에 뭔가 문제가 많다고 감지한 그와 동료들에게는 많은 유혹이 있었다. 높은 곳에 부탁해 승진을 시켜줄 수 있다, 좋은 다른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해 달라...하지만 부정한 거래를 그때 단호히 마다했기에 나중에 정말 '저축은행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터졌을 때 '깨끗한 인재'로 분류돼 '수술팀 헤드'로 발탁됐다.
"당시 L 전 의원의 부하 그러니까 보좌진 중 일부, 그리고 그쪽을 통한 몇 군데서 은근히 유혹이 있었어요. ...하지만 딱 한마디 했습니다. 아직 학생이던 두 아들이 그러더군요. '아버지, 옳은 일을 하시다 직장에서 물러나시면 저희가 아르바이트를 해서든 공부하고 집안 책임지겠다'고요. 그래서 소신껏 사표를 품고 다니며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제 그는 두 아들(39세, 35세)을 잘 키워내고 남은 시간과 여력을 학교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 그리고 서민금융 2개의 아이템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우리 아들 둘은 서울대·고려대 지들 힘으로 나왔지만…유학까지는 못 보내줬다.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면서, 이제 조금 생긴 여력으로 후배들 뒷바라지를 할 것이라며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짓는다. 서민금융을 마음껏 연구하고 '키다리 아저씨'로서의 인생 2막을 즐기는 그의 앞날에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