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제공=구글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제공=구글

| 이코노미사이언스 홍승환 기자 |

“우리의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휩쓰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익숙하면서도 단단한 확신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남긴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AI 기술로 재현한 ‘디지털 육성’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선보인 브랜드 영상이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시대를 지나 기업들은 이제 시간의 흔적이 담긴 기억까지 재현한다. ‘유산 마케팅(Heritage Marketing)’ 시대다.

LG D-301, 65년만에 부활한 전설의 선풍기(제공=LG전자)
LG D-301, 65년만에 부활한 전설의 선풍기(제공=LG전자)

◆ 금성표 선풍기와 포니, 다시 돌아오다

대형마트에 1960년대 디자인을 살린 선풍기, 라디오, 토스터가 등장했다. LG전자는 옛 금성 시절 선풍기를 복원해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신일 역시 60년 전 모델을 다시 출시했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의 향수, 누군가에겐 색다른 디자인이다. 복고는 특정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촌스럽지만 솔직한 디자인이 빠른 시대의 속도에 잠시 쉼표를 준다.

현대차는 1974년 첫 고유 모델인 ‘포니’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수십 년 전 금형을 떠오르게 하는 라인이 요즘 감성과 어우러지며 반향을 일으켰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정서를 미래로 확장한 방식이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모습을 AI로 복원한 영상의 한 장면 (제공=한국고등교육재단)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모습을 AI로 복원한 영상의 한 장면 (제공=한국고등교육재단)

◆ 창업주의 철학, AI로 살아나다

SK는 고(故) 최종현 회장의 모습을 AI 기술로 재현했다. 영상 속 최종현 회장은 마치 직접 우리와 대화하는 듯 생생하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해 여러 행사에서 공개했다.

이들 AI 영상과 음성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기업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며, 창업주의 철학과 가치관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내부 임직원들에게는 ‘왜 이 길을 가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고, 외부 소비자와 시장에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리는 역할을 한다.

유산 마케팅을 통해 기업들은 자신의 뿌리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단순한 향수 효과를 넘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핵심을 짚어낸다. 창업주가 남긴 메시지를 새롭게 가공해 오늘날의 도전과 비전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AI 기반 디지털 복원은 기업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를 준비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브랜드가 단순 제품을 넘어 철학과 신념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LG전자가 복원한 1959년 금성 라디오/제공=유튜브 갈무리 
LG전자가 복원한 1959년 금성 라디오/제공=유튜브 갈무리 

◆ 과거를 선물하는 브랜드

LG전자는 최근 퀄컴 CEO에게 1959년 금성 라디오를 복원해 선물했다. 이 라디오는 한국 가전산업의 출발점이다. 오래전 금성사 시절 만든 첫 라디오 모델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것이다.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다. 당시 라디오는 수신율과 음질, 기능 모두 지금 제품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옛 디자인과 금성 로고, 묵직한 손맛까지 원형을 최대한 살렸다.

선물받은 이들은 단순한 전자제품 너머, 한 산업의 뿌리와 역사를 느낀다. LG전자는 이 라디오에 “우리는 여기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최신 성능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 제품에는 한국 가전 산업이 쌓아온 시간과 노력, 그 첫 출발점의 상징성이 스며 있다. 라디오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다. 브랜드가 지닌 기억과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기업은 제품을 넘어, 과거의 유산을 새로운 세대와 공유하고 계승한다.

포니 쿠페 복원 차량/(제공=현대차)
포니 쿠페 복원 차량/(제공=현대차)

◆ 차별화, 정체성 그리고 기억

불확실성이 짙은 시대, 브랜드는 무엇으로 경쟁할까.

기술력, 가격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그래서 더 많은 기업이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창업주 육성, 원형 디자인, 오래된 로고. 이 모든 것이 브랜드의 근거다. 사람들은 오래된 물건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기업은 그 감정을 기억하고 활용한다.

유산 마케팅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꺼내 오늘을 새롭게 보는 창문이 된다.

한 시절의 제품과 철학을 다시 꺼내는 기업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지금 또 다른 누군가의 ‘처음’으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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